예전의 여름은 찬물 샤워와 수박 한 조각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름이 두려운 계절이 되었다. 단순히 ‘덥다’는 감정이 아니라, ‘위험하다’는 감각이 피부에 와닿는다. 폭염주의보가 일상이 되었고, 해가 뜨면 외출이 망설여진다. 이 글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담론이 아닌, 바로 ‘내 하루’를 바꿔놓은 여름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여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한 나만의 작고 구체적인 생존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1. 계절이 아닌 재난이 된 여름
① 여름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순간
처음으로 여름이 무섭다고 느낀 건 몇 해 전이었다. 그날은 기온이 38도를 찍었고, 햇볕은 ‘뜨겁다’기보다 ‘아프다’에 가까웠다. 밖에 나가자 숨이 턱 막혔고, 몇 분 걷지 않았는데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그날 이후, 나는 ‘폭염주의보’라는 단어를 재난 경보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 이상 여름은 야외활동의 계절이 아니었다. 출퇴근 시간도 재조정해야 했고, 낮에는 외출을 삼가야 했다. 기온보다 더 두려웠던 건 습도였다. 습도는 공기를 벽처럼 만들어, 내 호흡을 막았다. 나는 점점 여름을 회피하게 되었고, 그것은 삶의 반을 피하게 되는 일이었다.
② 실내에 있어도 안심할 수 없는 열기
처음엔 에어컨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폭염에 에어컨은 성능을 잃기 시작했고, 전기요금은 무섭게 치솟았다. 선풍기와 에어컨을 동시에 켜도 2시간만 지나면 공기가 뜨거워졌다. 밤에도 식지 않는 기온 탓에 잠은 깊지 않았고, 아침이면 더 피곤했다.
창문을 열면 미세먼지가 들어오고, 닫으면 더워진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점점 좁아지는 여름을 살고 있었다. 실내라는 ‘안전지대’도 이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2. 폭염 속 생존 루틴의 탄생
① 햇빛을 피하기 위한 생활 재배치
폭염은 내 일상을 재편했다. 점심시간에 마트에 가던 루틴은 해가 떨어진 저녁 7시 이후로 옮겨졌다. 운동은 새벽에 하고, 산책은 밤늦게 한다. 하루를 ‘해가 있는 시간’과 ‘없는 시간’으로 나누게 되었다.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땐 모자, 쿨토시, 아이스팩이 필수다. 물은 무조건 1리터 이상 챙기고, 버스를 탈 때도 정류장 그늘부터 확인한다. 이 모든 게 ‘살기 위한 전략’이 되었다. 예전엔 그냥 ‘더운 날’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날’이 된 것이다.
② 내 몸이 먼저 알려주는 경고 신호
폭염 속에서 가장 예민해진 건 내 몸이다. 약간의 어지럼, 입마름, 두통이 신호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증상도, 지금은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나는 이제 가방에 항상 미니 선풍기와 얼음물, 소금 캔디를 챙긴다.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감각 때문이다. 여름은 이제 내 건강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흔드는 계절이 되었고, 나는 내 몸과 매일 대화해야 한다.
3. 기후변화가 만든 새로운 감정들
① 여름이 올수록 불안해지는 마음
봄이 지나면 불안이 몰려온다. 올해는 얼마나 더울까? 전기요금은 또 얼마나 나올까?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어쩌지? 폭염 속 부모님은 괜찮을까?
기후 변화는 단지 자연의 변화가 아니다. 내 마음의 기후도 함께 흔든다. 조금만 더우면 짜증이 늘고, 소음에 예민해진다. 폭염은 내 감정도 과열시키고, 삶의 온도도 높인다. 불안은 점점 일상의 배경음이 되었다.
②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까: 작고 구체적인 생존법
나는 이제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연습’을 한다. 아침마다 몸을 체크하고, 저녁엔 미지근한 물로 샤워한다. 냉장고에는 얼음이 항상 준비되어 있고, 햇볕이 강한 날엔 일정 자체를 미룬다.
기후에 맞춰 삶을 조율하는 일은 불편하지만, 새로운 생존의 감각을 만든다. 작은 실천들이 쌓여, 여름을 버틸 수 있는 마음의 그늘을 만든다. 그리고 그 그늘 안에서 나는 다시 하루를 살아낸다.
결론: 여름은 달라졌고, 나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여름을 좋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계절을 두려워만 할 필요도 없다. 나는 여름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고, 작게나마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낸다.
폭염은 이제 계절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다. 그리고 생존은 단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나를 지키는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다.
여름이 점점 두려워졌지만, 나는 매해 그 여름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같은 여름을 살아내는 중일 것이다. 우리는 함께 더위 속을 지나가고 있고, 살아남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